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성흔/선수 경력 (문단 편집) === 2011 시즌 === 2011시즌부터 [[조성환(1976)|조성환]]의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을 맡았다.[[http://sports.media.daum.net/baseball/news/breaking/view.html?cateid=1028&newsid=20101201071032003&p=sportsdonga|#]] 이대호의 발목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이유로 이대호가 지명에 들어갈 경우가 생김에 따라 좌익수로의 출장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2월 15일 두산과의 연습경기에 첫 좌익수 출장 예정이었다.[[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081680|관련기사]] ...이었으나 시범경기 전 교통사고가 났었다. 자세한건 롯데 자이언츠/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의 [[롯데 자이언츠/논란 및 사건사고/선수 관련#s-3|홍성흔 교통사고]] 문단 참조. 시범 경기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면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시범경기 타율 0.514(1위), 타점 11(1위), 안타 19(1위), 출루율 0.550(1위), 장타율 0.676(1위)으로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5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거기다 왠지 모르게 [[김주찬]]이나 [[손아섭]]보다 더 나은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된거 마무리 투수도 한번 시켜보는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개막이후 수비에서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는데 실책만 없을 뿐 그냥 잡기 어려울거 같으면 바운드 처리하는 등, 큰 실책만 없다 뿐이지 외야의 폭탄이 될 소지는 아주 컸다. 더군다나 당시 [[김주찬]]이라는 외야진의 폭탄이 있는데 양사이드에 폭탄을 달고 있는 셈이었기에 다시 외야로 돌아간 [[전준우]]만 이리뛰고 저리뛰고 개고생했다. 거기다 문제는 애초에 시즌 시작 전 [[양승호]] 감독은 주전이 아니라 간간이 백업 수준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주전 좌익수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탓인지는 몰라도 10시즌 때와 다르게 장타율이 급감하였다. 실제로 좌익수로 뛴 11시즌 들어서 체중이 8kg 정도 빠졌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5월 17일에서야 '''첫 홈런'''을 쳐냈다. 게다가 '''장타율은 0.340'''. 장타율이 급격히 올라간건 롯데로 이적한 이후라고는 하나 그래도 두산에서 있을때도 장타율이 4할을 넘었다는걸 생각하면.... 다행히도 손아섭이 복귀하면서 좌익수는 안 갈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김주찬이 다치는 바람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 5월 17일, 문학 SK 전에서 [[전준호(1975)|전준호]]의 직구를 받아쳐서 시즌 첫 홈런을 드디어 신고했다! 그라운드를 돈 직후 홍성흔은 어찌나 감격스러웠으면 덕아웃에 들어가 김무관 코치와 포옹을 했다. 이날은 [[박종윤(1982)|박종윤]]이 만루홈런을 친 날이기도 했다. 6월 9일 삼성전에서 [[이우선]]의 공을 받아쳐서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다. 결국 롯데는 이날 [[장원삼]]과 [[이우선]]을 털어버리면서 13:7로 이겼다. 시즌이 지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지 슬금슬금 3할 타율 가까이 올라갔지만 장타율은 완벽히 망하고 말았다. 7월 23일 타율 0.301, 홈런 4, 타점 38, OPS 0.754을 기록하여 드디어 3할대 타율로 복귀했다. 2011시즌 타율 .306을 기록,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7안타 3볼넷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68, 장타율 .474, 출루율 .45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